마음속풍경 부단한 자기 점검으로 진정한 학자로 기억되는 #29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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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한 자기 점검으로 진정한 학자로 기억되는 정약용
정약용 (丁若鏞, 1762. 8. 5~1836.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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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여건에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함으로써 학문적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정약용. 정약용은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학문을 완성해 백성에게 도움을 준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다. 암행어사로서 탐관오리의 부패와 타락을 철저히 폭로했으며, 과학적 지식과 재능을 발휘해 수원성 축조에 거중기를 사용 해 백성의 노고와 희생을 덜어 주고 비용을 절감하는 등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펼쳤다.
그는 이렇게 뛰어난 능력 덕에 왕의 총애를 받으며 많은 관직을 지냈다. 그러던 1801년, 그의 나이 서른아홉에 위기가 찾아왔다. 언제 풀릴지 기약 없는 유배를 당한 것. 청년기에 천주교 신앙에 젖었던 일로 ‘천주교 박해 사건’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정치가로 탄탄대로를 달려오던 그에게 예기치 못한 시련이 닥친 것이었다. 보통은 시대를 원망하고 자신을 그러한 처지로 몰아간 세력에 복수를 꿈꾸지만, 그는 유배를 인생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 결과 정약용은 십팔년의 유배 생활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학문에 더욱 매진했다. 국가 경영에 관련된 제도·법규의 준칙이 될 만한 것을 저술한 「경세유표」, 지방 관리인 목민관이 백성을 잘 다스리도록 요령을 정리한 「목민심서」, 죄인을 처벌할 때 유의해야 할 점과 법을 적용할 때의 마음가짐 등을 제시한 「흠흠 심서」를 비롯한 5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모두 유배지에서 저술했다. 그는 유배를 학문을 완성하는 점검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이처럼 부단히 노력하는 그의 삶을 보며 우리도 자신이 세운 목표 중에 얼마만큼 이루어 냈는지 중간 점검해보고 미래를 계획하는 시간을 갖자.



